출처: https://www.ohseoul.org/2020/programs/%EA%B1%B4%EC%B6%95%EA%B0%80-%EC%A1%B0%EB%B3%91%EC%88%98-%E2%91%A0/event/193
건축가의 여러 작업을 돌아보면서 건축 세계를 탐색해온 건축가특집으로 올해는 건축가 조병수를 만납니다. 건축가 조병수는 건축을 실용적이면서도 솔직한 재질의 거친 사과 상자 혹은 막사발에 비유하곤 합니다. 실용적인 박스의 절제된 형태는 사용자의 경험과 인식을 일깨우는 본질적인 공간의 경이로움을 담기 위한 것입니다. 나아가 단순한 형태의 병렬 혹은 조합은 사이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내외부 공간의 흐름을 엮어냅니다.
기능에 충실하지만 그 안에 기품이 담긴 조선 시대의 막사발, 미국 몬태나 지역의 농업, 산업 건물, 한옥의 경험을 좋아하는 건축가는 기능과 재료 본연의 특성에 충실하면서도 기능을 넘어서는 아름다움과 기품을 발견해냅니다. 이는 일관성 있는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형태의 흐름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인식을 우선하는 유기적인 건축과 맞닿아 있습니다.
유기적인 공간을 담기 위해 조병수의 건축은 간결하고 기하학적인 추상성을 띱니다. 비평가들은 이를 두고 모더니즘과 동양 사상, 유기성과 추상성과 같은 공존하기 어려운 극단을 포용하면서 현대 지역주의를 추구한다고 설명합니다. ‘거칢 속의 세련됨, 세련됨 속의 무심함'으로 대표되는 그의 건축은 그로 인해 세계화와 지역성의 경계에서 보편성을 갖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 이유로 올해 세계적인 비평가 케네스 프램튼의 저서 <현대 건축:비판적 역사>의 개정판(5th edition)에 처음 소개되는 한국 건축에서 건축가 조병수는 고 김수근, 조민석과 함께 등장합니다.
재료에 대한 이해, 쉬운 시공 방식과 구조에 대한 해석 등 만드는 것에 관한 관심 또한 그의 건축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입니다. 정제된 원형의 공간이 주는 감동, 동시에 재료와 구조에 대한 실험과 시도는 우리가 건축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우리는 건축을 통해 적어도 사람들이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방법에 변화를 줄 수 있다’라는 마크 라자탄스키의 말을 떠오르게 합니다. (건축은 태도이고, 옷도 태도이다.)
올해 건축가특집은 건축 영상/영화 제작 스튜디오 <기린그림>과 협업으로 공개된 5개의 건축 영상과 함께 인터뷰로 만나봅니다.
미국 대학을 선택할 이유도 독특합니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을 따라 몬태나대학을 선택하셨어요. 왜 그 소설이 동기가 되었을까요?
누구나 그런 기억 몇 개는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무시해도 될 만큼의 영향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면 자신에게 굉장히 많은 질문을 던졌고, 그렇기 때문에 작업의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일들이죠.
저에게 그중 하나는 당시 청계천 헌책방이었어요. 지나다가 들어가서 집은 책이 마크 트웨인의 『What is man』이었는데, 한글판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이었어요. 당시엔 『톰 소여의 모험』을 쓴 그 마크 트웨인인지도 몰랐어요. 인간을 너무나 비관적으로 그린 책인데, 인간의 순수한 사랑이란 없고,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마저도 결국 자기를 위한 선택이고 결정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어요. 그게 저에게는 큰 질문을 던졌어요. 어떻게 보면 약간 괴롭다고 해야 하나, ‘저게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어요. 항상 인간이나 인생을 훨씬 더 아름답게 긍정적이라고 바라보고 행복하게 자란 편이었는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궁금했죠.
어쨌든 그분의 소설이 좋아서 도대체 어릴 때 어떤 동네에서 어떻게 자라고 살았을지 궁금했어요. 이왕 가는 거면 그 지역에 가보고 싶었죠.
나중에는 스스로 어느 정도 답을 얻게 되었던 것 같아요. 『What is man』에서 말하는 것은 인간을 이성적으로만 바라봤던 것 같고 그 이면에 감성적인 면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그 책을 읽고서 10년, 15년 건축 공부를 하면서도 계속 이성과 감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원 졸업 논문 때 한 ‘경험과 인식’이라는 주제도 감성적인 부분을 다루고자 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몬태나 지역에서 마주한 창고나 농업 시설들을 보면서 강렬한 감흥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지역의 풍경에서 얻은 건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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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도 형식보다는 최소한의 재료로 스마트하게 지었어요. 옛날에 지었던 우리나라 건물들도 담백하고 솔직하고 꾸밈없이 실용적으로 지었잖아요. 서구의 벌판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설들이었기 때문에 감명받고 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당시 활발했던 국제 담론도 현장에서 접할 수 있었을 듯해요.
(...)
당시의 건축 스타일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저뿐 아니라 친구들도 그런 경향이 딱딱하다는 생각하게 되고, 그런 것에 꼭 얽매이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포스트 모더니즘도 나오고 1980년대에 디컨스트럭티비즘이 나오는 등 경직된 것을 새롭게 해체하는 형식도 나왔죠. 그야말로 프랭크 로이드의 딱딱함을 깨는 완전히 다른 형식이 나왔을 때 거기에 다 동의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많이 나눴던 것 같아요.
캐나다 시골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건물의 아름다움과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런 형식을 깨든지 다른 형태가 필요해서 덧붙이듯 만들었을 때, 그 자체가 아름다웠다고 이야기해 준 적 있었어요. 저는 그 말에 공감했어요. 우리가 공부하던 1980년대가 포스트모던이나 해체주의 건축이 나오기 훨씬 전인데, 경험이 없고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사람들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시골의 건물을 보고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것 같고요.
평소 ‘실용성과 솔직한 재질감, 투박하지만 기품이 담겨있는 건축’을 말씀하시던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이 먼저 영향을 미쳤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결이 닮아있는 곳을 경험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한국인의 어떤 심성과 자연관이 일본 사람과 굉장히 다른데, 제가 볼 때는 한국과 미국이 더 비슷한 것 같아요. 미국 사람들이 볼 때는 한국과 일본이 비슷하다고 보겠지만요. 한국의 경우, 유교적인 생각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고 자연환경이 척박하여서 모여서 편안하게 만들고자 하는 이유도 있을 수 있죠. 미국도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청교도 정신 속에서 담백하고 솔직하게 있는 걸 그대로 표현하는 것과 두 번째는 최소한의 재료로 스마트하게 구조나 마감, 결부 같은 걸 만들어 시공하는 거죠. 농업 건축물에서 보면 솔직담백한 유사점이 보이는 것 같아요.
일본이나 중국의 토속 건축에도 대부분 그런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형식이 다른 것 같아요. 스위스에 갔을 때 아기자기하고 잘 다듬어서 만든 건축을 봤을 때 일본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일본이나 스위스나 독일 이쪽이 비슷하다고 한다면, 아마 언어를 연구하면 연관성을 밝혀낼 수 있을지 몰라요. 표현 방식 같은 것들도 분명하고요. 우리는 그와 다르게 오히려 미국의 농업건축이 보여주는 특성과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몬태나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으로 가셨습니다. 하버드 대학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 ... )
학교 자체는 별로 안 좋아했어요. 너무 형식에 치우친다고 생각했죠. 제가 지원해서 들었던 수업은 맥 스카건(Mack Scogin) 교수님 한 분이었던 것 같아요. 맥 스카건 교수는 스튜디오 때 돼지우리를 보여줬어요. 본능적인 환경에서 돼지들도 밥을 먹게 할 수도 있고, 멈추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는데, 감정과 감성적인 부분에 대한 것이었어요. 맥 스카건 교수는 잘 만들기도 하지만, 미국 시골에서 그야말로 혼자 실무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만든 분이죠. 공부를 많이 했던 것도 아니고 석사 학위가 있던 것도 아니고요. 그분도 시골의 랜드스케이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어쨌든 하버드 사람들이 추구하던 경향 혹은 그 방향을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몬태나 영향이 커서 계속 몬태나를 그리워하면서 혼자 자유롭게 생각하거나 시골 생각을 많이 했었죠.
어느 대학이나 학장의 분위기에 따라서 그 시기 커리큘럼이나 교육의 방향이 확고해지잖아요. 그 당시 하버드 대학의 학장은 어떤 분이셨나요?
어떻게 보면, 하버드 대학은 모더니즘의 줄기를 약간 가져왔던 거죠. 1937년대에 그로피우스가 히틀러를 피해 와서 제대로 된 건축 대학(graduate school of design)을 만들 때 건축과 디렉터로 일하면서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를 데려왔으니까요.
저는 맥 스카건 교수의 감각적 건축의 영향을 받았지만, 당시 학장은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 교수였어요. 당시 유럽의 젊은 건축가들을 많이 초대해 왔죠. 스위스의 헤어초크 앤 드 뫼롱(Herzog & de Meuron)도 젊었을 때 와서 가르쳤고 디너 앤 디너(Diener & Diener) 그리고 멀스 앤 메이니(Mercel Meili)라는 젊은 건축가도 있었어요. 만들기에 치중해 있는 부분들은 좋았어요. 디테일에 관심이 있어서 수업을 듣고 싶었고, 1:1 수업을 요청하면 그분들이 받아들여 주셔서 한 시간, 두 시간씩 벽돌을 어떻게 쓰는 게 좋은 것인지, 유럽에서는 어떤 전통을 가지고 돌을 써왔고 조인트 방식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등 건물을 만드는 것에 대해 배운 것은 좋은 계기가 되었죠.
많은 비평가가 소장님의 건축을 ‘유기성과 추상성의 만남’이라고 표현합니다. 서로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주제를 어떤 식으로 접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유기성이라는 건 기하학적인 형태가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선과 흐름, 바람이나 구름의 흐름이라든지 지형의 흐름처럼 아주 부드러운 부분을 의미하는 거고요.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자연인 거죠.
추상성은 실제로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이럴 것이라고 가정하는 거죠. 사각을 그리면 사각형이 되고 직선을 그리면 수평선이 되고 직선을 세워서 그리면 수직선이 되는 것들을 추상성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그곳에 사각형 공간을 콘크리트로 만들었는데, 그 안에 들어가서 자연을 관찰할 때 구름이 좀 더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거나, 바람이 내 몸을 통과해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든지, 그런 경험을 더 잘 인지할 수 있게 하려는 거죠. 추상적인 것을 통해서 유기적인 것들을 경험하는 것, 딱딱한 선을 통해서 부드러운 것이 적극적으로 우리 몸에 인지될 수 있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 같은 거겠죠.
또 다른 키워드는 ‘땅의 건축’입니다. 여러 프로젝트에서 지형은 중요한 출발점으로 언급되는데요.
‘땅의 건축’은 땅과의 관계에 대한 건축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땅집을 지어놓고 꺼진 공간에 들어가서 보니 하늘이 잘 보이더라, 나무가 더 잘 보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움직임, 반딧불의 움직임이 더 잘 인지되더라는 거죠. 꼭 땅만의 건축은 아니고 땅을 통해서 하늘도 보이고 자연도 보이고 우리 자신을 좀 더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건축이 아닐까 하는 거죠.
그에 관한 관심은 땅이 좋다는 데서 시작한 것 같아요. 땅이 좋다는 건 땅에 앉는 느낌이 좋다는 거죠. 땅에 웅덩이를 파고 앉으면 느낌이 색다르면서 포근할 수 있다, 땅을 많이 훼손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부터 출발하는 것 같아요. 어릴 때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시골에서 놀았던 기억을 통해서 받았던 인상, 흙냄새, 빗소리 등이 강하게 남아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싶고요.
또 땅은 하늘처럼 태연하고 아름답지 않지만, 만물을 소생시키는 어머니 같은 것, 나 자신의 존재감은 없지만, 남들을 존재하게 해주는 참 아름다운 것이다, 그래서 하늘보다 더 강하고 힘이 있는 것이라는 도덕경의 글, 노자 사상도 저에게 영향을 줬어요.
단순한 구축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경험과 인식’에 대해 비평가들은 ‘거침 속의 세련됨, 세련됨 속의 무심함’으로 표현합니다. 그 부분이 소장님께서 말씀하시는 ‘막의 미학’과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평소 한국 고유의 특성으로 막사발의 예를 자주 드셨는데, ‘막의 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이것이 소장님의 건축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막’의 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던 건 막사발로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막사발을 공부하다 보니 빠른 속도로, 즉흥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것이 한국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지형과 날씨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적당히 만들어서 잘 적응하고 써야 하는 건축의 흐름을 보더라도 말이죠. 중국으로부터 전형적이고 대칭적인(symmetrical) 건축이 들어와서 불국사 같은 게 지어졌다면, 이후 시대가 지나면서 지형에 적응해가죠.
막사발도 그 자체가 대칭적이거나 완벽한 형태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어떤 재질감이나 손의 흐름, 만드는 속도에 적당히 적응해서 우리가 만졌을 때는 따뜻하게 다가오는 미학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죠. 막사발뿐 아니라 민화라든지 춤이라든지, 음식이나 술,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막'자가 들어간 게 많아요. '막'자가 없더라도 버무려내는,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깊은 맛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거고요.
그렇다고 해서 막의 미학이나 의미를 건축에 직접적으로 도입하려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가끔 생각은 해보죠. 그런 것들이 적용돼서 나타날 수 있는 어떤 편안함이나 아름다움은 없을까? 아니면 이미 그렇게 되었던 것들은 없을까? 그러면서 고건축도 바라보게 되죠. 기둥을 편안하게 받히는 주춧돌처럼요. 까치호랑이 같은 경우도 그렇고, 막 생긴 것들을 ‘못난이’라는 귀여운 애칭으로 불렀던 것처럼 해학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한국 문화에 그런 따뜻하고 좋은 면이 있는 것 같은데, 현대 미학이나 현대 건축, 서양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게 아닌가. 이런 좋은 점들을 부각시키고 더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우리나라 고건축 특히 민간에서 만드는 한옥이나 도자기 같은 미학에서는 많이 적용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에서 배우면 어떨까. 약간 거친 상태로 덜 끝마쳤어도 편안함이 있는 상태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무조건 완벽하게, 모든 게 매끈해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조금 떨치고, 때에 따라 비틀어줘야 할 경우 너무 강박관념을 가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면 그 공간이 과연 나쁜 공간이기만 할지, 때에 따라선 그 또한 흥미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지, 그런 부분에 꾸준히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는 편이고요.
하지만 건축이라는 게 만드는 과정이나 법규 등에서 그런 부분을 많이 허용하지는 않죠. 그런 생각을 반문하는 정도로 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케네스 프램튼의 <현대건축:비판적 역사> 5쇄에 드디어 한국 건축에 대한 챕터가 등장합니다. 한국 건축에서는 고 김수근, 건축가 조민석과 함께 조병수 소장님이 언급되었는데요.
그 연장선에서 한국 건축에서 한국성은 이미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본질에 대한 질문을 탐구하고 건축을 통해 해석하는 행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세계의 건축 지형 속에서 한국 건축이 어떻게 포지셔닝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소장님의 생각과 소감도 궁금합니다.
케네스 프램튼의 역사책에 나온다는 것 자체는 자랑스럽고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아직 한국 건축이 국제적으로, 미학적으로 논리화되어있지 않아서 그 사람들은 ‘이게 뭐지?’ 긴가민가한 정도죠. 일본 건축의 ‘와비사비’처럼 확실하게 이해되는 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 같아요.
그것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 생각에 국제적으로 인간이 다뤄온 미학 중 중요한 하나의 장르가 빠져있는 것 같아요. 자연에 순응하면서 생기는 편안함과 해학, 그러면서 해결해나가는 미학적인 부분은 분명 거론되지 않았죠. 이제 주목할만한 시점이 온 것 같아요.
외국에서도 ‘한국, 뭐지? 뭐가 있는 거야? 중국과 일본과 다른 게 뭔가가 있나?’하며 주목하기 시작한 거죠. 때문에 우리 스스로 이걸 국제적 기준에서 잘 정리하고, 비판할 건 비판하고 그와 유사한 건 유사한 대로 설명하면서,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요.
이번에 나온 책에는 그런 부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었다거나 의미가 부여되지 못해 아쉽지만, 이런 건물들이 지어지고 있다 정도는 소개가 되고 있으니, 우리의 미학을 조금 더 정리해서 좋은 건축, 좋은 미학적 개념으로 발전되고 잘 받아들여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Todo:
케네스 프램튼의 저서 <현대 건축:비판적 역사>
패션 : 비판적 역사 이건 없나
해체주의를 다룬 강의나 책
조병수